소설 그놈과 그년

그년과그놈

광인일기 2019. 11. 1. 23:20
왕왕거리는TV소리가 귀에 거슬리지만 리모컨이 고장난덕에 일어나기가 싫어서 모른체하며 누워서 대가리를 돌리고 있는 꼬라지가 한심하기만 하다.
어쩌다 일자리를 잡으면 한두어달 일을 하다가 때려치우니 한심하기 그지없다.
나이가 한두개도 아니고 이제 환갑을 넘었는데 아직도 성질따지고 있으니 저지랄 해가면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 하기만 하다.
녀석은 배가 고픈건지 술이 고픈건지 뱃속에서 회가 동하는것 같아 방문을 열고 굴을 나선다
ㅡ휴우
한숨을 내쉰다 .
가파른 계단을 올려보면 늘 한숨부터 나오는것을 어쩔수 없나보다.
이놈의 지하실을 언제나 벗어날수 있을지
허름한 빌라 지하방은 퀴퀴한 곰팡이 냄새와 끈끈한 습기로 채워져있다. 명색은 반지하 라지만 이게 어떻게 반지하인지는 알수가 없다 .
계단을 오르면 보이는 담벼락과 앞에 자리한 빌라덕에 햇빛이라고는 하루에 한시간이나 들려나.
계단을 오르니 그나마 담벼락에 바짝붙어 자라는 은행나무가 눈에들어온다.
은행나무를 좋아해주려 해도 좋아할수가 없다.
퀴퀴한 은행의 냄새가 사람을 충분히 기분 나쁘게 한다.
어릴때는 아주 오래된 은행나무 아래서 놀기도 했는데 지금은 가을날 은행나무는 무조건 멀리 돌아가는 대상이 되어버렸다.
조만치 보이는 슈퍼앞 평상에는 동네 술꾼인 김씨와 정씨가 앉아서 술잔을 기울이며 앉아있다.
한때는 좋은대학을 다녔다는 양반들이 지금은 대낮부터 막걸리고 소주고 가리지 않고 마시는 주당이 되어있다.
가까이 다가가니 김씨가 손짓으로 부르기에 목만까딱하는 인사를 하고 슈퍼문을 밀고 들어갔다.
주인 아줌마는 손님은 아랑곳않고 TV 에 눈을팔고 앉아서 무얼씹는지 입을 오물거리고있다.
그래도 슈퍼를 하면서 두아이를 대학까지 마쳐주었다고 자랑을 하는 아줌마는 육십이 갓넘었다는데 몇해전에 남편이 일터에서 사고를 당하여 먼저 보내고 혼자살고 있기에 밖에있는 김씨나 정씨나 한번만 하면서 줏어먹으려 껄떡대기도 한다. 그래도 녀석이 인물이 있어서인지 먼저 주워먹는 바람에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하기사 주기만 한다면 들이대지 않을 남자새끼 없을거다. 아줌마는 큰미모는 아니어도 밉상은 아니고 동안이라 늙은거나 젊은거나 틈만보이면 수작질을 한다.
ㅡ아줌마 사람이 들어오면 아는척좀 하지
ㅡ아는척은, 필요한거 있으면 집어와서 계산하면 되지
ㅡ그래도 그렇지 나는 손님인데
ㅡ손님은 얼어죽을, 뭐가 필요한데
ㅡ그냥 속터져서 소주한잔 하려고
ㅡ소주? 대낮에 뭔 소주, 뭔일 있나?
ㅡ뭔일은 그냥 답답해서
ㅡ요새 일안하는가보네
ㅡ안하기는 못하는거지 .씨발 이제는 일도 없고 이러다 굶어죽겠어
ㅡ그렇게 일이 없어
ㅡ말도마 그나마 일이 있는것도 나한테는 안돌아와
중국애들부터 우크라애들까지 널렸어.
아줌마와 몇마디 하다보니 그냥슈퍼에 앉아서 한잔할까 하는 생각이든다.
ㅡ아줌마 여기서 한잔 마셔도 되나
아줌마는 멀뚱이 바라보다가 퉁명스럽게 뱉어내는 말은 역시 였다.
ㅡ안돼 밖에 나가서 마셔
ㅡ나참 뭐한잔 같이하면 안돼
ㅡ오늘은 안되고 내일와 나내일 가게 노는날이니까
ㅡ알았어.돈은 내일줄께
뭔말인지, 밖에서 김씨와 어울리기 싫어서 지금 여기서 술한잔 하겠다는데 내일을 말하고 있으니.
그렇다고 집에들어가 그녀석하고 술잔을 기울이기는 더욱 싫어서 소주병과 오징어 다리를 뜯어서 문을 밀고 나섰다.
정씨가 먼저 아는체를 하며 자리를 권하기에 엉덩이를 평상에 붙이고 종이컵을 집어드니 김씨가 얼른 소주를 따른다.
ㅡ술잔은 채워야 맛이고 기집은 품어야 맛이지
ㅡ김씨야 품을 기집이라도 있지 나는 품을 기집도 없네
정씨는 괜시리 심퉁맞은 소리를 하며 소주를 벌컥벌컥 들이킨다.
그래 김씨야 잘난 마누라 덕분에 일을 안하고 이렇게 술타령을 해도 편안 할지도 모른다.
김씨마누라인 정현 엄마는 시장에서 순대국밥집을 하는데 애들키우고 서방 놀려도 될만큼 그럭저럭 장사가 된다고 한다.
밤에 마누라를 품는지는 모르겠지만 김씨는 술이 취하면 마누라 엉덩이 만져본지가 언제인지 모른다고 혀꼬부라진 소리를 하기도 하고 이놈의 마누나가 어디서 무얼하는지 아직도 집구석에 들어 오지를 않는다며 12시가 다된 시간에 내방문을 두드리기도 했었다.
동네에서는 정현엄마가 남자하고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기도 하다.
이런들 저런들 내일도 아니고 나또한 기집 속살맛본지가 언제였던가 기억을 더듬어야할 정도이다.
뭔 쓰잘대기 없는소리가 나올지는 모르지만 이자리가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이놈의 동네에 들어온지 삼년에 요즘같이 힘들기는 처음인것 같다.
일을해서 돈을 만져본지 세달이 되어가니 당장 담배값이 걱정되기에 이르렀다 .
ㅡ뭔생각을 그렇게해
정씨의 목소리에 정신을 돌리고 술잔을 든다.
ㅡ아니 일이 없으니 걱정되어서
ㅡ최씨도 주민센터에가봐
정씨의 말에 짚이는게 있지만 모른채 하면서 물었다.
ㅡ주민센터는 뭐하러
ㅡ나같이 국가 공무원 되라고
정씨는 당뇨도 심하고 혈압도 높다.
이렇게 매일 술타령이니 몸뚱이가 성할리 없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술을 마시고 있다.
정씨는 몸이 대단하다고 생각된다. 그렇게 술을 먹어대는 데도 아직까지 숨을 쉬고 있으니, 하여튼 그덕에 정씨는 기초생활 보호자가 되어 정부에서 지급하는 푼돈으로 연명하고 있다.
아들이 하나 있지만 아들도 수입이 일정치 않고 부양을 포기했다 해서 수급자가 되었단다.
씨발 대학까지 나온 양반들이 이꼬라지로 사는걸보면 한심하다는 생각이 드는것은 어쩔수 없지만 지나내나 다를게 뭐있을까 하며 생각을 접고 정씨를 바라보니 정씨의 눈이 많이 풀려있다.
가을로 접어드는 날이기에 더위는 많이가신듯 해서 그나마 다행이지만 아직도 모기새끼들이 설쳐대는 바람에 잠을 이루기 힘든판이니 평상에서 눈을 붙이는것도 좋으리라.
ㅡ정씨 한숨자지 그래
ㅡ아따 최씨는 지금 잠이와 씨발 여기저기 나라를 구하느니 뭘만들자느니 떠들어 대는 판에
ㅡ쓸데없는 소리 하지말고 한숨자셔 눈이많이 풀렸는데
ㅡ쓸데없는 소리가 아니지 내가 신경쓰지 않으면 내삶은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거여 내가 가만히 있는데 나라가 밥을 먹여줄것 같아 우는애 젖준다고 울고 보채야 시끄러워서 젖을 주는거야
하기사 그말이 맞는거 같다. 가만히 있는데 배가고픈지 누가알겠는가.
ㅡ나는 그만 일어나 볼거니까 술을 더먹든 잠을 자든 마음대로 하세요.
평상에서 두잔을 마신술은 시동을건 엔진이 되어버렸다
다시 슈퍼로 들어가니 아줌마가 쳐다보며 인상을 쓰기에 소주병을 들고 병마개를 열어 소주를 목구멍에 들이붓는다.
ㅡ이쁜얼굴로 인상쓰면 보기싫어
ㅡ엄마나 내가 이뻐보여 ? 그눈으로 살았으니 지금 그모양이지
ㅡ내가왜 ? 내돈주고 내밥먹고 살면 되는거지 사는게뭐 더있나
ㅡ잔소리 말고 밖에 인간들은 아직도 그러고 있어?
ㅡ그래, 세월이 좀먹는것도 아니고 그냥들 앉아서 세월아 네월아 하네
ㅡ밥이나 먹고들 술을 마시는건지, 최씨는 밥먹었나?
ㅡ안먹었으면 밥줄려고?
ㅡ밥줄까?
그냥 간단하게 몇마디 주고받고 있었지만
술병이 났는지 제대로 처먹지도 못하면서 헛구역질만 하다가 간신히 달랜속에 소주가 들어가니 몸은 살만하게 풀리고 있었다.
ㅡ아니, 들어가서 라면이나 끓여먹지
소주값은 내일줄께.
슈퍼문을 나서니 정씨는 평상위에 널부러져 있고 김씨는 보이지 않기에 정씨를 그냥두고 집으로 향했다.
그래도 다행인것이 집근처 평상에 누워있으니 사고날 염려도 없고 날씨도 괜찮고 죽더라도 사람들 눈에 금방뜨일테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지하로 내려가는 발걸음이 휘청거림을 느끼며 이제는 살만큼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텅빈 집구석은 소주를 부르기 충분할 만큼 적막에 싸여있다.
늦여름 지하방은 열기로 가득해서 웃옷을 벗어버리고 소주병을 들고 목구멍에 들이 붓는 녀석의 손은 조금 떨리고 있다.
그년을 찿겠다고 이곳저곳 돌아 다닌것도 벌써 10년이 되었다. 주민센터에서도 알려주지 않는 년의 주소를 알수도 없고 그년친구를 우연히 만나서 이동네부근에서 우면히 지나가는 그년을 보았다는 말만 믿고 이동네에 자리를 잡았었는데.
그년의 모습을 찿을수는 없었다.
그래 이제는 그년이다.
나를 내팽겨치고 가버린 그년
한때는 너무나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그년
죽이고 싶도록 보고싶은 그년
그년은 술을 마시는 녀석을 정신병원에 끌고가서 입원 시키기도 햇었다.
물론 녀석의 가족들 도움을 받았지만.
심심 풀이로 인터넷 카페를 드나들다 재수 오지게 없게스리 엮인 그년
그래도 녀석에게는 그년이 첫사랑이었단다.
마누라도 있었고 아주 어린 기집애하고도 살아봤지만 사랑을 하지는 못하고 사랑받기만 했다는 녀석이 부럽기도 했었는데 마지막에 만난 그년에게 사랑을 느끼고 할수있는 모든일을 해가며 그년을 도왔지만 그년은 무슨 영화대사같이 녀석이 필요할때는 없더라며 이별을 통보햇단다.
그것도 알콜병원에 입원해 잇는 사이에 말이다.
말이야 멋있지만 뻔할뻔자지
녀석은 병원에 있는데 남자는 필요하겟다
녀석과 계속 지내는것은 내일이라는 미래가 없다고 느꼈을거고 그리고는 여기저기 기웃거리다 남자새끼하나 꾀찬거다.
씨발 녀석은 이미 죽어버린 시체가 되었고 그년을 찿아다니는 나만 남아 소주병을 빨아 댕기고 있다.
녀석이 그립기도 하다.
꿈은 크지 않아도 남에게 해꼬지는 못하는놈
항상 자기 주머니부터 털어버리고 빈털털이가되어 술값을 구걸하던 그놈.
마음만 약해서 불쌍한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못하던 그놈.그래 죽어버린그놈
대신에 남은놈은 그년을 찿아 죽여버리겠다는 치기만 남은 그놈.
씨발 술이퍼지니 눈이 감긴다.
아침인가보다 눈이떠졌다.
아니 술기운이 떨어져 몸이 문을 연거였다
어쨌든 반쪽창문으로 그나마 실낱같은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일어나자. 그리고 열심히 빨자 소주를.
슈퍼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아마도 이동네에서 녀석이 제일먼저 일어났는지도 모른다.
슈퍼도 문을 열지 않았다.
그래 오늘은 쉬는날이라고 햇지
그렇다고 소주를 포기할수 없어서 열심히 문을 두드리자 아줌마가 문을 열어 주었다.
술줘
돈내
돈없어 외상
불쌍하다 들어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여편네는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한번 줄라그러냐?
주긴 뭘줘!
밥안먹었을테니 밥이나 먹고가.
방구석에 잠시 앉아있으니 밥상이 들어왔다.
왠 미역국?
생일.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애들은 어쩌고 혼자서 생일상이야
다지들이 잘해서 컷다고 돈몇푼 보내주고 땡이야.
그래 그럼 생일빵 한번해주랴 하며 웃는 내얼굴을 쏘아본다.
농담, 어쨌든 더늙은거 축하한다.
밥이나 먹어라.먼저간 니서방보다 내가 더고맙지 ㅎ
그래 외로웟는지 모른다.
멀리서 아는듯 모르는듯 사는 자식들
서방없는년 집적재는 뭇사내들
나이가 문제냐 치마가 문제지.
밥상위의 주전자를 들어 지잔 내잔을 채우고 축배를 들었다.
속을 훑고 내려가는 알콜기운을 느끼며 공연히서러웟다.
그렇게 두어시간이 지나자 치마가 벗겨진다
이상하다
왜 치마가 벗겨지는걸까?
어잿든 술이 취해도 물건은 취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렇게 생일을 축하해주고 거나하게 술이취한채 거리로 나섰다.
한여자와 오랜시간을 지내본지 오래되어서 불편하기만 했기때문이다.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퍼먹었는지는 모르지만 눈을뜨기도 전에 퀴퀴한 냄새가 습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보고야 말았다.
은행나무 가지에 걸려있는 김기의 모습을
미친놈 왜 거기 매달려있어 햇다가
모가지가 매달린것을 볼수 있었다.
아무것도 할수 없었다.
개자식 내자리를 차지했다니
이어서 소란 스러운 시간이 지나고나서도
밖으로 나갈수 없엇다.
집구석에 술이 남아 있을리는 없고
몸은 술을 부르며 괴롭히고 있었다.
용기가 필요했다.
은행나무에 눈을 주지않고 땅바닥만 보면서
간신히 슈퍼에 도착했다.
병신 꼴값한다더니 뒤지려면 멀리가서 뒤지던지 하필이면 동네에서 뒤져
그한마디에 정신이 들어왔다
술병을 들고 나발을 불었다.
시간이 약이다 돈이다
그래 김가는 용감했다
녀석은 용기를 잃어 버린지 오래되었다.
눈물이 흘렀다
이유도 모른채 눈물이 흘러내렸다.
녀석의 내일을 보는것 같아서 주체할수없는 오열이 터졌다.
술병으로 몇일을 생고생을 하고있는데 슈퍼 마누라가 오가며 돌봐주어서 기운을 차릴수 있었다.
그리고 도움을 청했다
은행나무가지에 목아지가 매달리는건 싫었다.
사랑이고 지랄이고 따지지말고 말벗이나 하자며 꼬셨다.
그리고 술을 안먹는 조건이라면 이라는 말을 듣고는 반주로 하루에 한병까지만 이란 조건을 성사 시켰다.
그리고 슈퍼로 거처를 옮겼다.
불편한것이 무서운것 보다는 참을만 했다.
이제 그년도 잊을거다
아니 잊은지 오래다.
오기로 버티고 있었을분.
퀴퀴한 냄새대신에 살냄새를 맡으며 아침ㅁ햇살을 바라볼수 있었다.
녀석도 그년도 다죽어버리고 오직 세월만이 살아남아 숨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