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속에서

노동절

광인일기 2008. 5. 2. 00:07

이제는 노동절의 유래도 기억나지않는다.

명칭이 근로자의날로 바뀌었다고해서 그런것은 아니다.

그만큼 무디어져서 인지도 모른다.

내가 선택한 나의 직업에서 부터 노동은 내인생의 반을 차지하는 화두가 아니었나 싶다.

노동이라는 두마디 단어에 붙잡혀 살아가는 우리인간들 이기에 진정으로 신성한 것일수도있다.

노동자, 근로자, 정신노동자, 육체노동자, 화이트카라, 브루카라,모두같다.

나는 이제 노동이 신성한 것이라는 헛소리를 믿지않는다.

한때 그러한 사고를 수용했었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허무맹랑한 소리를 믿을 만큼 나는 철없지 않다.

인간에게 일은 있어야한다.

하지만 그것은 밥을 먹기위해서 다른 사람앞에 고개숙이는 슬픈노동이 되어서는 안된다.

일을 안하면서 사람이 살수는 없다.

하나님이 있다 한다면 하나님도 일을 한다.

죄인을 벌하고 선인에게 복을주고 천당갈놈 지옥갈놈 가려야하고........

일을 안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어떠한 일을 어떠한 조건하에서 해나가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어떤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부르며, 그림을 그리며, 글을쓰는 일을 하며 자신들의

삶에 필요한 것들을 가질수있다.

어떤이들은 하루종일 땡�아래서 비지땀을 흘리며 밥벌이를한다.

일을 안하고 먹고 살수는 없을까

그냥 이렇게 시간이나 죽이면서 살아갈수있는 방법은 없는것일까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이런 생각을 할수밖에없다.

아니 있을수도있다.

부자집에서 태어나 물려받은 재산을 소비하면서 산다고 하면은 가능할수 있다고 생각할수도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라.

우리는 식사를 한다고한다.

먹는행위 자체도 일이라는 것이다.

일을 안하고는 살수가없다.

단지 슬픈노동을 피하기위해서 우리들은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좋은 대학도 그래서 가려하는 것이고,

이름을 날리면 슬픈노동은 피할수있는 시간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기를 쓰는 것이다.

나도 슬픈노동을 피하기위한 노력을 한것이다.

그래서 슬픈노동은 피할수있었다.

그렇다고해서 현실이 좋은 것은아니다.

노동이 신성한지 안한지는 내가 따질바가아니다.

하지만 따지지 않는다고해도 나는 너무깊이 간여하면서 살아왔다.

노동자 라는 말에는 많은 아픔이 들어있는것같다.

그리고 노동이라는 단어는 우리에게 금기시되는 단어의 일종같은 관념이 들기도한다.

근로자라는 말은 없애야한다.

삶을 위해서 슬픈노동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근로자라는 단어는 없어져야한다.

그자리를 떳떳히 노동자라는 단어가 자리해야한다.

노동이 힘들고 더러울수있지만 부끄럽고 터부시되어서는 안된다.

우리는 누구나 노동을 통하여 삶을 영위할수 있기때문이다.

그저 말한마디 바꾸어서 노동자들의 지위가 향상 된것같이 보이게 하려는 얕은수에서

이제는 벗어나야한다.

 

 

 

 

 

'삶속에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공원의 섹스폰 연주회  (0) 2008.05.04
태극기  (0) 2008.05.03
강아지  (0) 2008.05.01
안성기행  (0) 2008.04.30
집착  (0) 2008.04.29